이은호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글로벌 공급망 위기,
코로나 펜데믹과 주요국 수출통제가 원인
수직 분화된 세계경제 냉전시대와 동일,
작은 교역제약에 큰 충격

[산업인뉴스 산업인뉴스 ] 2021년 가을, 우리나라는 생각지도 않았던 위기를 경험했다. 디젤엔진 차량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요소수를 갑자기 수입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모든 화물 수송이 정지되고 건설공사도 중지되는 사태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신속 대응으로 파국은 면했으나, 공급망 위기가 우리 일상에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오래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영국과 독일에서도 특정 제품이 부족하여 국가안보까지 위태로웠던 시기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 개전과 동시에 국제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영국과 독일은 화약과 비료 부족 사태를 맞게 되었다. 두 제품을 당시에는 칠레 초석(saltpeter)을 원료로 생산했었다. 그런데 독일 함대가 1914년 12월 포클랜드 해전에서 영국에 의해 격파 당하자 독일은 화약이 부족해 패전할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독일 칼스루헤 대학 교수였던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공기 중의 질소를 뽑아내어 암모니아를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였고, 일류 화학기업인 BASF의 카를 보쉬(Carl Bosch, 1874~1940)는 이를 산업화시켰다. 그 결과 암모니아는 쉽게 화약과 비료로 전환될 수 있었다. 하버- 보쉬 공법 덕분에 독일은 자국 내에서 화약과 비료를 계속 생산하여 국민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었다. 하버-보쉬 공법이 세계 식량 증산에 공헌한 바는 지금도 높게 평가되며, 이를 인정받아 하버는 1918년, 보쉬는 1931년에 각각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칠레 초석을 확보한 영국도 화약이 부족했다. 총포의 장약인 코다이트(cordite) 화약의 부자재, 즉 아세톤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세톤의 원료 광물을 적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아세톤의 대체 제조법을 공모하게 되었는데, 이 순간 동갑내기 두 영웅이 등장한다. 첫 번째 인물은 해군성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이고, 두 번째 인물은 화학자인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 1874~1952)이다. 벨라루스 출신 유대 인이었던 바이츠만은 녹말을 발효시켜 아세톤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 후 처칠을 면담하여 자신의 기술을 제안하였다. 처칠은 즉시 사업 추진 결정을 내리고 바이츠만에게 개발의 전권을 주었다. 이후 영국 해군성과 탄약부는 각각 바이츠만을 고문으로 모시고 공장을 건설하였고, 1916년부터 옥수수를 발효시켜 아세톤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옥수수 수입이 어려워지자 자국산 마로니에 열매도 원료로 활용했다.

 

수출통제 대비해 원자재,
완제품 대체기술 개발과 규제정비 필요
산업 효율성과 안전 확보 위해
핵심 산업 국내 유지도 검토해야

바이츠만의 기술 덕분에 영국은 아세톤과 코다이트 화약을 차질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 총리는 그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방안을 국왕에게 상신하겠다고 하였으나, 바이츠만은 자신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보상을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다. 로이드 총리는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1848~1930) 외무장관에게 지시를 내려 영국 내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였던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 1868~1937)에게 서한을 보내게 하였다. 이 문서가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역사적인 ‘밸푸어 선언’(1917) 이다. 바이츠만은 1921년에 세계 시온주의자 회의 의장이 되었고, 1934년부터는 팔레스타인에서 연구소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밸푸어 선언 30년 후인 1948년 5월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독일과 영국의 사례는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할 때 과학기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탈리아에서 암모니아 생산기술을 도입하여 세계 2위 규모의 질소비료공장을 화약공장과 함께 함경남도 흥남에 건설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모든 강대국들은 과학기술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¹ 여기서 처칠 수상은 과학기술과 관련한 중대한 결정을 또 내리게 된다. 영국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받아들여 1941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자폭탄 개발을 지시한 것이다. 미국은 같은해 가을에 영국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후에야 ‘맨하탄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최근의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에다 주요국 간의 수출통제가 맞물려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소수 사태는 중국이 호주와의 갈등으로 석탄 수입을 중단하면서 시작됐고, 자동차 출하 지연에는 반도체 유통 불안이 작용했다.

수직적 분화²가 활성화된 세계 경제는 냉전시대에서와 유사한 국제교역 제약이 일부 분야에서만 나타나더라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취약하다.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국인 한국은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던 주요 강대국들이 경제안보 위기에 과학기술로 대처했던 사례를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 의회가 논의 중인 ‘반도체산업지원법안’도 좋은 예이다. 우리도 경제지위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재산이 늘어나면 보험에 가입해야 하듯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원자재와 완제품에 대한 대체재 기술을 개발하고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2010년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대체소재 개발사업을 시작했고 미국은 전략광물생산법³을 제정했다. 산업에서도 효율성에 더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핵심 산업을 국내에 유지하는 것도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되어야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1) 미국은 과학연구개발청(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을 설립하고 레이더, 근접 신관 등을 개발했으며 원자탄을 개발한 맨하탄 프로젝트도 OSRD 소속 으로 출발했다.

2) 수직적 분화(Vertical Specialization)는 원자재, 중간재를 거쳐 최종재가 나오는 상품의 생산 과정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진행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생산에 참여하는 국가 들의 해당 수출입이 모두 경제활동으로 중복 계산되므로 세계화를 통한 경제성장이 증폭되어 계산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수직적 분화 생산과정이 막히게 된다면 경제침체 또한 증폭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참 고: “The nuts and bolts come apart,” The Economist, Mar 28th 2009

3) National Strategic and Critical Minerals Production Act. 2012년에 처음 제정되어 지금도 계속 개정되고 있으며, 전략광물 개발 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일민국제관계연구원 99호(2020.2.21)와
본 기고는 산업인 2022년 8월호(23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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